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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

새까만 밤을 달릴까 - 새까만 밤을 달릴까 아버지, 그리고 박목월의 시와 함께한 경주여행 만질만질한 운전대엔 아버지의 오랜 손질이 묻었다. 운전대를 오가는 손의 깊은 주름 사이로 우리는 밤길을 떠난다. 모든 소리가 내려앉은 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앉은 차 안에 약간의 적막이 흐른다. 아버지는 옛길에 회상을 푸는 중이고, 나는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있어서. 이 고요함이 싫지 않다. 길이 갈라질 때마다 저쪽 길에는 어떤 만남이 있었고, 어떤 추억이 자고 있다며 아버지의 여행기가 펼쳐졌다. 낮은 목소리에 기대어 짧은 잠을 청한다. 스르륵 눈을 뜨면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버지가. 스르륵 눈을 붙이면 따뜻한 온기가. 스르륵 눈을 뜨면 창가를 스치는 숲길이. 경주로 가는 길. 터널에 들어서면 안내등은 자동차의 속도만큼 뒤로 흘렀다. .. 더보기
젊음이라는 무언가無言歌 / 청춘 유럽 여행기 젊음이라는 무언가無言歌 Songs without words 창가에 말려둔 젊음이란 이름도 조금씩 바스라진다. 모두가 빛나고 모두가 행복한 지금의 세상에 도리어 나의 젊음은 바래왔다. 노력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던 그 시절에 의미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 정작 짐은 꾸리지 않은 채, 방에 쌓인 마음의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책꽂이 구석에 남아있던 고시 문제집을 팔고, 화가의 꿈을 그렸던 화폭도 미련과 함께 접었다.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이란 구호는 건배사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이때의 몸과 욕망, 시간과 사람들, 믿음과 감정엔 반드시 끝이 있다. 남은 청춘은 남은 시간에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시계를 거슬러 날.. 더보기
<유숙> - 어머니께 부치는 오베르트라운 여행기. 호숫가에 앉아 엄마의 하루를 생각해.글과 사진을 핑계로 내가 떠나 있는 사이, 현실의 시간을 엄마는 홀로 버티고 있겠지.이곳의 한낮과 그곳의 밤이 닿아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아.오늘은 언제쯤 집을 나섰을까.새벽에, 혹은 푸른 밤에 걸음을 재촉했을 그 고됨이 종종 마음속에 파문을 그려.여행을 떠나면서 어떻게 인사했는지 기억이 안 나.조금은 든든한 기분이 들 때까지 한 번 더 안아줄걸. 오늘 내가 묵을 곳은 호숫가의 작은 마을이야.푸른 빛이 도는 큰 산 아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 위에 물이 고이고, 사람이 고이듯 –조용한 날엔 생각도, 감정도, 아래로, 더 아래로 고여.이 여행은 언제쯤 끝날까.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어디쯤을 걷고 있는 걸까.함께 걷던 엄마의 보폭이 점.. 더보기